우리의 ‘문화’는 미지근한 도가니인가?
10년의 시간이란 단번에 기억하기엔 불가능한 시간대이다. 그렇지만 기억과 경험이 아직 낭만적인 추억꺼리나 사치스런 회상으로각색되어 변질되지 않는 기간을 대략 잡아보자면 길어야 10년이다. 더욱이 변화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서 10년이란 단위는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리는 시간지표일 수도 있다.
현재를 종착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정적 시간대에서 만나는 기억의 기점은 90년대 이다. 회고적인 지극히 회고적인 후일담들의 잔치가 끝난 지도 벌써 몇 해지만, 아직도 생생한 엊그제 같은 90년대는 ‘문화’가 마치 새로운 대안처럼 등장한 시기였고, 덩달아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대가 있을 수 있다는 환상의 시기이기도 했다. 불안과 노출, 혼돈이나 혼락, 분열과 탈중심을 적극적으로 양팔 벌려 환영한 시기였으나 현재 남아있는 환상의 찌꺼기는 기대와는 다르느 뭔가 쿰쿰한 그것이다.
90년대를 거쳐 등장한 ‘문화’는 이 시점에서 새롭게 대두된 정치적 입장이자 게릴라적 주체를 만들어내는 도가니로서 작용하길 기대하는 전략의 하나가 되었다.
90년대가 단적으로 문화의 도가니이기를 희망했던, 전략적으로 문화담론을 폭발적으로 배출해냈던 상황은 몇몇 사회과학과 문화담론에서 신선하게 등장한 잡지들만 리뷰해보아도 알 수 있다.
사회와 정치 현장과 이론 사이에서의 담론의 문화적 가치를 긍정한 네오 맑스주의 이론지 [이론]지라든가, 문화담론의 정치적 게릴라들이 모여서 만든 문화의 과학적 비평지인 [문화과학], 혹은 성담론과 같은 기존의 담론 영역에서 미흡했던 분야의 성숙이나 기존 공교육의 전면적 비판등을 다룰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던 [또 하나의 문화], 보다 과격한 언설행위의 실천을 강조한 [오늘예감],[상상] 등과같은 잡지들은 바로 이런 상황들을 비평이나 담론차원에서 다뤄주는 것들이었다.
당시 이들 잡지들은 진보와 개혁의 주체들이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갑자기 그리고 한꺼번에 문화라는 커다란 화두로 당단하는 지면인 듯 했다. 우리 사회의 진보 주체들은 일종의 문화주체이자 문화게릴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심지어 80년대까지 이어진 군부독재시절이나 일제 잔재가 청산되는가싶기도 하고, 여하튼 반색할 만한 일들이 벌어질 것 같기도 했다.
그 환상의 시기에 해당 주체들이게 요구된 문화덕목은 현실 문화연구팀의 시리즈물 중 하나인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라는 제목처럼 “너를 표현하라”였다. 미치지는 않아도 되지만, 일단 표현하라는 강령은 신세대의 덕목이었다.
새삼스럽게 그 어조를 떠올리는 것은 10년이 엄도록 풀리지않은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 표현의 주체가 과연 누구일까, ‘너’라는 지시어가 단지 기호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사실 그 당시 분위기를 약간 과장해서 말해보면, ‘너랑 주체는 없어도 되는데, 표현만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없는 표현도 표현이 되어야 하고, 할 게 없어도 멋대로 해야 하는, 한마디로 표현을 강요하는 ㅅㄴ종 변종 성경 문구 같다고나 할까. 과연 그 표현이란 덕목은 누구를 위한 누구의 발언인가. 문화의 주체에 대한 의문이다.
10년이 흐른 지금 과연 ‘문화’라는 도가니를 뜨겁게 달군, 혹은 그 도가니에서 달구어진 게릴라들이 있는지, 있다면 지금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당시 문화 담론의 정치적, 현실적 가능성은 ‘대중’이란 대상 설정 속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중은 애매한 대상에 불과하였고, 말 그대로 담론상으로만 가능하다는 개념적 한계를 쉽게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1997년 [문화과학] 봄호의 특집이었던 문화비평의 비평, 논쟁제기를 보더라도 대중주체인 동시에 대중 대상이라는 모호한 설정의 한계에 대한 방성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벌써 2004년이 된 지금, 진정한 문화 주체로 거듭난 절박한 주체들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새로운 문화의 주체들이 이전과 같은 도발성과 절박성을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문과 진단이 필요하다.
주체의 자기 대상화 – 지금, 일단은 휴식이 필요하다.
백치놀이의 참여자들 가운데 유승호와 조남현은 으음한 속 내용을 품은 ‘백치’란 화두를 어눌하고 솔직하게 풀어온 30대 초반의 작가들이고, 기획자와 이들 작가들을 삐딱하게 봐온 응시자로서의 정현은 결과적으로 백치놀이에 동화된 또 다른 작가이다. 일종의 백치로서, 혹은 백치의 상태에서 솔직해지자는 것이 일단의 단계였다면, 결코 재미로서만 남지않은 자기 반문의 결과로서의 이 놀이가 각자의 기억이 탈색되어가면서,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은 흔적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 이다.
유승호는 이번 전시에서 지난 작업들을 망라하여 골라내었다. 그리고 저니 준비 과정에서도 자신의 습관을 조금은 비틀어보고 약간씩 탈피해보았다. 전시된 물품 혹은 오브제들은 작품의 맥락에서 전시되었던 작품들, 그 작품들을 위한 습작, 낙서, 아이디어들, 미밮료작품들, 작품 포트폴리오, 색깔 작업 그리고 하고 싶었던 작업이지만 완성되지않았던 프로젝트 등이다.
앉은뱅이 쪽방에는 유승호의 작업노트 쪽지들고 프린트물들이 다닥다닥 벽과 천정에 붙어있다. 이 쪽지들 한장 한장을 들춰보면 한 개인의 일기를 숨어보는 것 같아서 은근히 긴장하다가도 비슷한 상념들에 흠칫 흠칫 놀란다.
지극히 자기애적이고 자기 배반적인 이 상념들의 낙서, 그리고 수많은 동서양의 대가들의 작품 프린트물들이 과연 작가에게 얼마만큼의 자유와 억압과 희열을 가져다 주었을 지 잠시 의문을 춤어볼 수 도 있다. 작업노트이기도 한 낙서들은 이미지 스케치처럼 하나의 인간을 인상 스케치하듯이 느슨하게 이어가는 글이다. 작가 스타일 대로 그냥. 그것이 작가의 인상이면서 현재 상태이다.
대학시절의 드로잉 조각과 현재 유승호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시늉과 페인팅 캔버스, 가장 백치스러운 형광 벽 드로잉과 낙서들은 작품으로서보다는 지난 흔적의 기록으로 기능한다. 전시 중반에도 계속 기둥에 결과를 붙였고, 아마도 계속 할 ‘짓꺼리’인 바깥 여기저기에 형광 동그라미 그리기 놀이는 유승호의 지극히 백치적이면서도 솔직하기도 하고 적나라하기도 한, 가장 유스호다운 놀이다.
유승호는 비교적 많은 전시를 해왔지만, 기존 전시에서의 형식적인 측면을 벗어던지고 이번참에 가장 솔직하고 편안하게 자신을 주섬주섬 슬금슬금 드러내 보인 것이다. 섬세한 유승호의 개인적 감성은 어눌하게 표현되었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자기 짓을 비껴가면서 행위한 바보짓을 통해서 드러나지 않았던 자신의 이면들과 속내가 자유롭게 풀어져 나오게 되었다.
유승호는 작가 개인의 이야기를 ‘백치’라는 주제하에서 풀어나간 것이다. 작가 자신의 소주제는 “섬세한 바보(그냥 바보, 멍한 바보, 나른한바보등)”이다. 대로 유승호는 마치 때늦은 모더니스트 같기도 하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미술시스템과는 어울리지않은 모호한 인물 같기도 하다. 현재를 규정하거나 설명하지않고, 작가는 꼼지락거리면서 자신의 몸과 직관의 영역 내에서 무엇인가를 만든다. 그 과정을 거쳐 전시는 유승호의 백치 되기 프로젝트는 ‘나른한 결과’를 이끌어내었다.
작가의 자기 작품으로부터의 소와 배반은 항상 의 특정의 맥락에서 발생한다. 과연 작가의 자기실험이라는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인가? 결과는 마찬가지로 작가 자신을 소외시키겠지만, 적어도 유쾌한 과정의 흔적은 남을 것이다. 작품과 그 작품의 생산자인 작가라는 주체는 항상 컨템퍼러리라는 맥락에서 소외와 배반을 거듭한다. 어쩌면 그것은 ‘모호한 주체의 자기 소외’일지도 모른다. 단 그 모호한 줴가 간명하게, 명확한 욕망하는 주체로 거듭나기는 여간해선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작업 혹은 현재적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유쾌할 따름이다.
실패가 예견된 프로젝트 – 백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백치들"은 표현의 주체인 그 ‘누구’, 혹은 그 대상이자 주체였던 ‘대중’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고 있는, 아니면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거나, 바보처럼 수줍어하는, 혼란스럽고 항상 어긋나는 인생의 기로에서 부유하는, 혹은 자신이 아닌 다름 존재로 가장했던 어리석음에 시달리기도 하는 애매한 주체들의 놀이다.
이들에게 전시라는 수줍은 놀이는 실천의 장이자 반성의 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철지난 감을 지울 수 없은 지금의 전시는 각자에게는 막간 휴식이기도 하고, 표현의 주체임을 확인하고 거듭나고자 하는 절실한 몸짓이기도 하다. 각자 따로 그리 동시에 전시는 중간 자기 점검을 위한 장치가 되었다.
사실 "백치들"은 딱히 누군가를 지칭한다고 하기보다는 백치 같은 상황을 일컫는다. 여기서 ‘백치’는 90년대 찬창대를 거치면서 ‘문화’담론의 진정한 주체이자 생산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나름대로 모호한 주제로 성장해온, 미술이라는 영역 내에서 ‘자복’에 어색한 작가라는 굴레를 쓴 현재 주체들의/에 대한 어눌한 표현이다.
영상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 세대임에 솔직한 척, 슬그머니 영화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긴 하였지만 백치들이란 영화 내용이 전혀 상관없는 것도 아니다. 영화 백치들은 전문직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서 백치짓을 하는 것을 일종의 페이크 다큐처럼 찍은 것이다. 실패한 프로젝트로서의 백치 노릇은 백치인 척 햇던 본인을 본인 스스로 적나라하게 확인하였을 뿐이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거북하고 따가운 시선은 더욱 냉담해진 채로 끝났다. 백치 짓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각자 제자리로, ‘정상’의 견고한 사회의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는 현실적인 드라마의 해피엔딩 혹은 판타지로서의 비극으로 마친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영화가 백치놀이가 성공했다면, 과연 지금의 신자유 주의 질서가 전복될 것이고 불완전한 자본주의가 냉철하게 보완된다거나 이상적인 사회주의 따위가 도래할 것인가. 문화가 권력이 되어 다양성이 보장되고 문화가 자본이 되어 돈과 시간의 권력을 쟁탈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판타지 속에서 라면 가능하겠지만, 백치들의 삶은 판타지가 아니다. 그래서 백치놀이는 성공할 수 없거나 상공한다해도 그 결말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백치 놀이로서의 전시 "백치들"은 한시적으로 2004년 현재 각자 자기모습을 캐어보는 프로젝트였다. 그 프로젝트에서 발굴해 낸 것은 우선 10년이라는, 기억이 그나마 가능한 시간, 현재진행의 역사로서의 시간대이고 유승호와 조남현 (그리고 그들의 수다스런 응시자 정현)은 그 시간대에 멈춰 서서 자신들을 재연시키고 그 흔적을 남긴 것이다.
전시를 빌미로 한 미완의 놀이는 영화에서처럼 각자 성공하지 못한 백치 짓들의 허탈함을 덤으로 남겨놓았다. 허탈함은 10년 그러니까 이 작가들로서는 고스란히 20대였던, 여전히 엉켜있는 그 시간의 타래들 속으로 굳이 파헤쳐 들어갔기 때문이 아닐까.
1990년대 이후의 10년이라는 지금의 이 짧은 시간대가 일종의 지표가 될 수 있는 것은 사실 지속의 역사성을 지닌 사회가 아니라 망각의 근∙현대사 역사가 되고 있는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망각과 왜곡의 기록으로 만들어지는 역사에서는 과거 청산과 세대 교체, 글고 아방가르드의 역사화라든가 진보 세력의 정치적 입지 구축이라는 과제가 매번 배반의 결과를 낳을 뿐이다. 이 배반은 자기 자신이 초래하는 것일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잠시 가볍게, 그렇지만 각 주체들은 자신의 무거운 짐을 화인할 수이밖에 없었던 백치놀이는 처음부터 실패를 예견한,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단지 우리는 이 놀이터에서 그나마도 아직 무책임한 망각의 시간으로 흘려버리지 않은 각자의 책임을 확인하는 것에 그쳤다.
주체의 무책임함, 혹은 게으름과 무지는 더 이상 어떤 위선으로도 가려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자신의 솔직한 모습으로서의 불완전한 주체의 모습은 그가 취하는 위선까지도 도발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나 백치야, 어쩔래’의 도발이 과연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망각의 현대사 속에서 무기력한 존재로서의 백치의 모습을 확인할수는 있었던 것 같다.
우리의 백치 놀이는 아쉽게도 미완성인 채로 소멸된다. 현대의 적나라함은 앙증스럽기야 하지만 진정성을 요구하는 솔직함은 도발이고 심지어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이번 단 한번의 백치놀이는 유일한 백치 테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음 번 백치놀이에서는 아마도 똘똘이 백치로서 위선과 가장을 앙증맞게 노출시키게 될 것 같다. 어쩌면 더 이상 가장할 수 없는 백치 자체로서 자신을 파괴시켜버릴지도… 죄는 그렇게 거듭나는 것이고, 백치들은 백치스러운 백치가 될 것이다.